아이를 키우다 보면 '지금 아니면 안 돼'라는 생각에 많은 걸 미리 준비하게 됩니다. 발달 자극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교구를,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면 책을, 다른 아이가 갖고 놀았다는 얘기만 들어도 장난감을 찾아보게 되죠. 저도 그랬어요.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, 사지 않았어도 될 물건들이 꽤 있었더라고요.
왜 그렇게 소비하게 되었을까
그때는 정보가 많을수록 불안해졌어요. ‘다른 아이들은 벌써 한자를 한다’, ‘요즘 엄마들은 영어 노출을 일찍 시작한다’는 말에 마음이 조급해졌죠. 아이에게 뒤처지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, 뭐라도 더 해줘야 한다는 죄책감이 컸던 것 같아요. 그래서 준비보다는 불안을 덜기 위한 소비를 한 적도 많았어요.
후회 1. 한글도 모르는 아이에게 한자 교재
누군가 “한자는 어릴수록 잘 외운다”, “사고력에 도움이 된다”는 이야기를 해서 급히 한자 교재를 샀습니다. 그런데 정작 아이는 한글도 잘 모르는 시기였고, 당연히 흥미도 전혀 없었어요. 책은 그대로 책장에 꽂혀 있고, 매번 볼 때마다 후회가 밀려옵니다. 지금 생각하면 ‘왜 그걸 그 시점에 샀을까’ 싶어요.
후회 2. 영어책 세트, 결국 안 읽히는 책장 장식
영어 노출도 중요하다는 말에 혹해서 전집을 구입했어요. 가격도 만만치 않았지만 ‘이 정도면 몇 년은 보겠지’ 하는 마음으로 결제했죠. 그런데 현실은, 한글책 읽어줄 시간도 부족했고 영어책을 꺼내면 아이가 "이건 싫어"라고 말하더라고요. 열 권 넘는 책이 거의 손도 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았습니다.
후회 3. 주제 중심 활동 교구, 지나고 나니 기억도 안 나는 것들
제 경험은 아니지만, 주변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제 중심의 월별 교구나 체험 키트도 후회 목록에 자주 오르더라고요. 한 달에 한 번 택배로 오는 구성도 좋고, 사진 찍어 기록하기엔 예쁘지만... 실사용률이 낮고, 한 번 하고 나면 다시 손이 잘 안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.
후회 4. 교육용 디지털 구독 서비스
앱 기반 유아 교육 서비스도 마찬가지예요. '한 달에 이 정도면 싸다' 싶어서 결제했지만, 하루 10분이라도 꾸준히 활용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. 특히 부모가 함께 봐줘야 하는 콘텐츠는 시간 여유가 없으면 금방 이용률이 뚝 떨어져요. 결제만 해두고 결국 이용하지 않는 ‘구독 유령’이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.
그래도 후회하지 않은 소비도 있어요
모든 소비가 후회스러웠던 건 아니에요. 아이가 자주 꺼내보는 그림책이나 손에 익은 미술 도구 같은 건 오래 잘 쓰고 있어요. 그리고 무조건 비싼 걸 사기보다는, 아이가 흥미 있어하는 주제에 맞춰 작은 단위로 시작한 건 확실히 만족도가 높았습니다. 결국 소비는 '누구의 기준이 아니라 우리 집 기준’으로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.
지금은 이렇게 기준을 바꿨어요
요즘은 책이든 교구든 사기 전에 꼭 ‘지금 우리 아이가 관심 있어 하는가’를 먼저 봐요. 친구가 쓰는 걸 무작정 따라 사지 않고, 최소 일주일은 고민 후 결정합니다. 체험단이나 중고 거래도 종종 활용하고요. 소비를 늦춘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걸 걸러낼 수 있는 방법이었어요.
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, 지금 사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이에요. 예전엔 '지금 아니면 늦는다'는 불안으로 샀다면, 지금은 '아이의 흐름에 맞춰가면 된다'는 여유를 갖게 됐어요.
혹시 여러분도 비슷한 소비, 해보신 적 있나요?
그때 왜 샀는지 기억하시나요? 지금이라면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실 것 같으세요?
육아는 매일 선택의 연속이고, 소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. 이번 글이 잠시 멈춰서 ‘우리 집 기준의 소비’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.